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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술의 무덤 ‘캐즘’이란 무엇인가? IT 산업에서 반복되는 이유

by 노바디12 2025. 12. 23.

새로운 기술이나 서비스는 등장하는 순간 큰 기대를 받지만, 그 기대가 실제 대중의 선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수많은 혁신 제품이 시장에 등장했다가 조용히 사라지는 이유는 기술력 부족이 아니라 ‘캐즘(Chasm)’이라는 보이지 않는 장벽 때문이다. 특히 IT와 정보통신 산업에서는 이 캐즘 현상이 반복적으로 나타나며, 기업의 성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소로 작용해 왔다.

신기술의 무덤 ‘캐즘’이란 무엇인가? IT 산업에서 반복되는 이유
신기술의 무덤 ‘캐즘’이란 무엇인가? IT 산업에서 반복되는 이유

1. 캐즘(Chasm)의 개념과 탄생 배경

캐즘은 원래 지질학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지층이 갈라지며 생긴 깊은 틈이나 단절을 의미한다. 이 개념이 경영학과 경제학 분야로 들어온 것은 1991년,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던 컨설턴트 제프리 무어(Geoffrey A. Moore)가 저서 Crossing the Chasm을 통해 스타트업과 기술 제품의 성장 과정을 설명하면서부터다.

 

제프리 무어는 신기술이 시장에 확산되는 과정을 소비자 유형에 따라 단계적으로 구분했다. 초기에는 혁신을 즐기는 소수의 ‘혁신 수용자’와 ‘초기 수용자’가 기술을 받아들이지만, 그 다음 단계인 대중 시장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커다란 간극이 발생한다. 이 간극이 바로 캐즘이다.

 

문제는 이 구간을 넘지 못하면 제품이나 서비스가 아무리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어도 시장에서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캐즘을 넘지 못한 기술은 한정된 마니아층에만 머무르거나, 투자 중단과 함께 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퇴출된다. 이 때문에 캐즘은 흔히 ‘신기술의 무덤’이라고 불린다.

 

캐즘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산업일수록 이 현상이 더 자주, 더 강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IT, 정보통신, 플랫폼, 소프트웨어 산업에서는 기술 변화가 빠르고 소비자의 학습 비용이 높아, 캐즘을 넘는 것이 곧 생존 전략이 된다.

 

2. IT 산업에서 캐즘 현상이 반복되는 구조적 이유

캐즘 현상이 IT 산업에서 반복되는 데에는 몇 가지 구조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첫째는 소비자 인식과 기술 발전 속도의 괴리다.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지만, 대중의 이해와 생활 방식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초기 수용자들은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신기술의 가능성을 받아들이지만, 대다수 소비자는 명확한 효용과 안정성을 확인하기 전까지 움직이지 않는다.

 

둘째는 기존 대체재의 존재다. 새로운 기술이 등장할 때, 시장에는 이미 익숙하고 안정적인 기존 제품이 존재한다. MP3 플레이어가 처음 등장했을 당시에도 카세트테이프와 CD 플레이어라는 강력한 대체재가 있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기존 제품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로 넘어갈 충분한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 상황에서 신기술은 초기 관심을 받더라도 곧 침체기에 빠지게 된다.

 

셋째는 인프라와 생태계의 미성숙이다. IT 제품이나 서비스는 단독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네트워크, 플랫폼, 콘텐츠, 결제 시스템 등 다양한 요소가 함께 갖춰져야 비로소 대중화가 가능하다. MP3 플레이어 역시 인터넷 보급과 음원 다운로드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전까지는 큰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 기술 자체보다 이를 뒷받침하는 환경이 캐즘 극복의 핵심 조건이 된 셈이다.

 

마지막으로 기업의 커뮤니케이션 전략 문제도 캐즘을 심화시킨다. 초기 시장에서는 기술적 우수성을 강조하는 설명이 통하지만, 대중 시장에서는 ‘쉽고 편리한 가치’가 중요하다. 많은 기업이 이 차이를 인식하지 못한 채 기술 중심의 메시지를 유지하다가 캐즘을 넘지 못하고 실패한다.

 

3. 캐즘을 넘은 사례와 넘지 못한 사례의 차이

캐즘을 극복한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되는 것이 MP3 플레이어다. 1990년대 말 처음 등장했을 당시 MP3 플레이어는 저장 용량이 작고 음질에 대한 신뢰도도 낮았으며, 음악 파일을 직접 구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로 인해 대중적인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한동안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인터넷 보급이 확대되고, 음원 다운로드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디지털 음원 생태계가 형성되자 MP3 플레이어는 ‘휴대성과 편리성’이라는 명확한 가치를 제공하게 됐다. 특히 애플의 아이팟은 사용자 경험을 단순화하고, 아이튠즈라는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접근성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면서 캐즘을 넘어 대중 시장에 안착했다.

 

반면 캐즘을 넘지 못한 사례도 적지 않다. 기술적으로는 혁신적이었지만, 가격이 높거나 사용 방법이 복잡했던 제품들은 초기 수용자층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러한 실패 사례의 공통점은 기술 자체에만 집중하고, 대중이 실제로 체감할 수 있는 문제 해결과 편의성 제공에는 충분히 신경 쓰지 못했다는 점이다.

 

결국 캐즘을 넘는 핵심은 기술력이 아니라 대중이 받아들일 수 있는 형태로 가치를 재정의하는 능력이다. 시장은 항상 ‘더 뛰어난 기술’보다 ‘더 쉽게 쓸 수 있는 기술’을 선택해 왔다. IT 산업에서 캐즘이 반복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혁신은 빠르게 등장하지만, 이를 대중의 언어로 번역해 주는 과정은 언제나 어렵기 때문이다.

 

캐즘은 단순한 침체기가 아니라, 신기술이 생존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르는 결정적인 시험대다. 특히 IT 산업에서는 기술 발전 속도가 빠른 만큼 캐즘을 이해하고 대비하지 않으면 실패 가능성이 높아진다.

신기술의 무덤으로 불리는 캐즘을 넘기 위해서는 기술 그 자체보다 소비자의 시선에서 가치를 재해석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다.

 

결국 시장에서 살아남는 혁신은 가장 앞선 기술이 아니라, 가장 많은 사람이 이해하고 선택할 수 있는 기술이라는 점을 캐즘은 분명하게 보여준다.